(다음철도동호회 전문③게시판 11603글, 2005.11.02)
앞서 '중앙선'이 아닌 '~호선'처럼 번호를 부여하자는 것 때문에 논쟁이 있었는데요. 일단 저는 번호를 이용한 노선명 부여에 조건부 찬성입니다. 그러나 번호를 이용한 노선명이냐, 지명을 이용한 노선명이냐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인구 2000만이 넘는 거대 도시권인 수도권에서, 단순히 1, 2, 3..호선 과 같이 1차원적인 체계가 아닌, 지하철과 광역철도를 간의 위계를 고려한 좀더 체계적인 노선명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일단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일본의 지하철에서 노선명을 기호화하고 역명에 번호를 부여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성격의 것이지, 노선 자체를 번호화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가지고 일본에서도 지명을 이용한 노선명은 한계를 드러냈다.. 라고 하는 것은 논리 비약이라고 봅니다. 또 지하철은 그렇다 쳐도 일본의 수 많은 전철들, 우리로 치면 광역전철의 역할을 하고 있는 JR과 사철 노선들은 여전히 노선에 지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들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도쿄와 상당히 유사한 도시철도 체계를 가진 런던의 사례를 들기 위해 멀리 영국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섬나라라는 특징부터, 정치 체제, 비싼 물가, 열차의 통행방향 등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만 노선명을 짓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런던 지하철의 경우 일본처럼 지역명을 이용해 노선명을 짓습니다. 지하철의 경우 10개 남짓한 노선이 있어 번호를 부여하려고만 한다면 하겠지만, 백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명을 붙여 왔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지하철은 좀 내용에서 빗겨가니 일단 패스하지요.
문제가 되는 광역철도를 봅시다. 런던 주변에 열댓개 정도의 민영철도 회사가 운영하는 노선이 있는데(모두 옛 국철이 전신), 일단은 회사 별로 노선색을 분리합니다. 그러나 개별 노선에 번호를 붙이는 경우는 없으며, 일부 노선의 경우 지역명을 이용한 명칭을 부여하기는 하지만, 대개는 '○○~△△ 간 열차' 정도로 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역철도의 경우 수 십개의 노선이 있으며 운행계통까지 고려한다면 정말 셀 수 없는 노선이 있기 때문에, 번호 부여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수도권 전철처럼 간선철도와 아주 별개의 것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단적으로 런던 근교의 상당수 광역철도가 디젤동차), 번호 체계의 적용이 고려되지 않는 듯 싶습니다.
이와는 정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독일입니다. 번호 체계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일본 철도보다 오히려 독일 철도의 예를 드시는 것이 나았다고 봅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정말 극단적으로 번호를 부여하는 나라라서, U-Bahn(지하철), S-Bahn(광역전철)은 물론, Regional Bahn(지역철도)와 IC, ICE에까지 번호를 부여하지요. 우리로 치면 KTX 경부선, KTX 호남선을 KTX 10호선, KTX 20호선처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만 무턱대고 1호선, 2호선, 3호선.. 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열차들의 위상을 구분하여 번호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의 경우 그냥 1호선이 아니라 U1, 광역철도의 경우 S1, 또 지역철도에 따라 RE23, RB12..식으로 번호 앞에 그 열차의 등급을 표시합니다. 민영 회사에서 운영하는 노선도 별개의 노선 체계가 아닌데, 예를 들면 베를린 근교의 Ost Express의 경우 약자를 앞에 붙여, 'OE60'과 같은 식으로 명칭을 부여합니다. 정말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독일인들의 국민성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영국, 그리고 독일이 양 극단에 서 있다면, 그 둘 간을 절충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우리처럼 지하철에는 번호를 부여하지만, 간선철도나 TGV의 경우 지명을 이용해 노선명을 부여합니다. 눈여겨 볼 파리의 광역철도, 즉 RER도 번호 체계를 가지는데, 숫자가 아니라 알파벳으로 표기를 합니다. 즉 1호선, 2호선...13호선으로 지하철 노선을 표기하고요. 여기에 A선, B선...E선으로 광역철도인 RER을 표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명을 이용한 것과 숫자를 이용한 체계 중 꼭 무엇만이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각각의 도시가 처한 상황과 특성, 역사에 따라 적절한 것을 쓰면 되는 것이지요. 다만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만약 번호를 부여한다면 하되, 아무 기준도 없이 막무가내로 부여하지 말고, 지하철과는 체계를 달리해서 부여하자는 것입니다. 두 자릿수의 노선 번호가 나오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그것이 아무 기준 없이 무질서하게 부여될 경우 인식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선은 10호선으로 하는 것 만큼은 반대하고 싶습니다.
앞서 살펴본 철도 선진국 대도시의 경우 번호 노선명이냐 지명 노선명이냐는 나라에 따라 달랐지만, 모두 지하철과 광역철도를 구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였습니다. 겉에 보이는 모습만 같다고 지하철과 광역철도를 동일시 할 수는 없습니다. 광역철도는 그 목적이나 활용도의 측면에서 지하철보다는 오히려 철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통일호가 했던 역할을 전동차로 모습만 바꾸어 서울-천안을 달리고 있는 것이지요. 중앙선도 마찬가지입니다. '10호선'이란 명칭은 언젠가 9호선에 이어 건설될 '서울지하철' 노선에 부여되어야 합니다. 아니면 차라리 서울 시내에 건설될 경전철 노선에 이 번호를 부여하면 하지, 광역전철에는 반대합니다.
지하철이 한 구간에 한 노선만이 고정되어 달리는 것과 달리, 광역철도의 경우 같은 구간이라도 운행 계통에 따라 여러 노선이 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번호 부여에 신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도심에서 같은 노선이나 교외에서 운행 계통이 갈릴 경우 두 자리 숫자를 부여해서 S2, S21, S22와 같이 구분하기도 합니다. 수도권전철의 경인선-경원선 루트를 11호선, 경부선을 12호선, 중앙선을13호선처럼 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정리하면, 일단은 현재의 체계와 같이 지하철은 번호로, 광역철도는 지명으로 노선명을 부여하는 것으로 둘 간의 성격을 구분했으면 합니다. 이 경우 지하철과 광역철도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구분되지요. 다만 번호를 부여한다면 현재의 번호 체계와는 구분되는 체계로 했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Korail의 K자를 따서 '경인-경원선 K11, 경부선 K12, 중앙선 K15, 분당선 K21, 수인선 K22, 일산선 K3, 과천선 K41, 안산선 K42...' 과 같은 표현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알파벳이 거부감을 느껴지거나 노인들을 위해야 한다면 '광역11호선, 광역12 호선...'의 표현을 주로 쓰되 K는 약자로 쓰고요. 이 경우 서울1호선, 서울 2호선, 서울3호선.... 인천1호선 인천2호선... 광역11호선, 광역21호선.. 으로 체계화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동호회 차원에서 번호 부여에 민원 신청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요. 그보다는 지하철과 광역철도를 구분하여 체계화한 노선명을 요구하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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