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zino의 유라시아 철도기행 2006'

1부 -시베리아 횡단철도 완승기 -2 자루비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2006년 9월 20일(수), 자루비노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저 멀리 보이는게 함경도 땅이 아닐지..

식사를 하고 갑판으로 나오니 해가 떠있다. 서쪽 멀리 희미하게 육지가 보이는데, 아마도 함경도 땅이 아닐까 싶다. 현지 시각(서머타임으로 서울과 2시간 차)으로 오전11시가 조금 넘어 자루비노 항에 도착했다. 도착한 후에도 한참 뒤에나 내릴 수 있었다. 오를 때와 달리 외부 계단을 통해 배에서 내리다. 컨테이너 건물인 수속장으로 들어오니 12시 반경. 다시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러시아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공산시절의 잔재?를 느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두 세 창구를 통해 입국 수속을 한다. 더디기만 한 수속 시간. 우리나라 공무원보다 열배는 더 무뚝뚝해보이는 세관원들을 보며 한참을 기다렸고 2시가 되서야 내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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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수속 팁

-수속하는 직원은 아줌마였는데, 생각 외로 뭘 묻지도 않고 까다롭게 굴지도 않는다. 그냥 비자 복사한 것과 여권만 내면 잠시 후 도장 찍어서 돌려준다. 여기를 통과하면 세관에서 입출국카드를 체크한 뒤, 짐을 검사하고 나오면 된다. 입출국카드는 나중에 거주지 등록증으로 사용되며, 호텔 등에 신청을 하면 아래 도장을 찍어준다.

-나오면 오른편에 바로 구내매점이 있는데, 여기서 $1=R25로 환전을 해준다. 시내에 갈 때까지 루블을 못 구하니 일단 여기서 해야한다. 하지만 시내가 훨씬 많이 쳐주므로 많이는 환전하지는 말라(필자의 경우 50$을 환전). 매점에서 나오면 출구 왼편에 매표소(KACCA)가 있다. 여기서 블라디보스토크 행 버스표를 샀다. 320루블(약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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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비노 항의 모습


자루비노 항에 있던 기관차. 얼마 후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루비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버스

사실 처음에는 매표소에 달러를 내미니 뭐라뭐라 해서 알고보니 매점에서 환전하라는 소리였다. 하여간 언어가 안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영표? 같이 생긴 교포?형이 와서 서툰 영어로 이거저거 물어보면서 표사는 것 도와주었다. 이 형도 마침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참이라 같은 버스를 타게 되었고, 나중에 블라디보스토크 버스터미널에서까지 도움을 주시다. 여기에 써봤자 소용없겠지만 그래도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여객터미널을 나오니 개인 차량과 전세버스는 이미 출발하고 없고, 건물 우측으로 돌아가니 3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하나는 블라디보스토크행, 하나는 우스리스크 행, 또 하나는 글자를 못 읽었다. 2시 40분 경 버스가 흙먼지를 휘날리며 자루비노 항을 출발하다. 말이 항이지 건물 몇채가 전부인 황량한 곳이다. 마치 미국 서부 개척촌 같은 느낌. 군사지역의 느낌도 나고. 하여간 그에 비해 속초는 대도시였다.

왕복2차선 짜리를 도로를 40여분 쯤 가더니 난데없이 비포장도로다. -_-; 잠시 공사구간인가 싶었으나 2,3시간을 그렇게 가다. 그래도 자루비노-블라디보스토크면 나름대로 간선구간일텐데, 우리나라에서는 산골오지에서도 보기 힘든 비포장도로라니... 그래도 포장 공사를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 안 있어 이곳을 이용하는 관광객들도 포장도로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약 60km 남기고선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왕복 4차선 짜리 도로로 합류한다. 그제서야 좀 제대로된 마을도 보이고 한다.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4시간 20분이 걸렸다(나중에 구글어스로 확인해보니 서울-대전 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

가는 내내 자연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와 비슷하다. 빽빽한 침엽수림도 아니고 그냥 우리와 비슷한 나무들과 야산의 모습. 먼 옛날 고구려 발해의 땅이었을 이곳, 연해주.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같으면 논밭이나 아파트 촌을 개발되었을 법한 들판과 언덕들이 그냥 야생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 간간히 집이 몇채 보일 뿐. 경작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잡초와 갈대만 무성하다. 3시간 정도 달리니 대평원이 펼쳐지고 호수가 보이는데 우측 차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굉장히 멋지다. 자꾸 저 들판을 휘젓고 다니는 고구려 기마병사의 모습이 겹쳐진다. 내 핏속 어딘가에 꿈틀거리고 있을 고구려인의 기상. 고구려까지 갈 필요 없이, 러시아가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이곳을 가지기 전까지, 분명 조선인들 중 누군가는 이 넓은 곳을 배회하며 다녔을 것이다. 만주족과도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뭐 그랬겠지.


버스를 타고 가며 본 연해주의 풍경.

한편 자루비노에서부터 계속해서 단선철도를 볼 수 있다. 선로 상태는 매우 불량해보여(마치 예전 용산선처럼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는 느낌), 과연 열차가 다닐까, 폐선은 아닐까 생각했으나 역과 열차를 간간히 볼 수 있었다. 이 선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나진, 청진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아쉬운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구간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본선 상에서 갈라진 지선 정도로 보면된다. 블라디보스토크란 곳이 반도에 돌출된 곳이기 때문에 거기서 시베리아 철도가 시작되며, 북한으로 직접 연결된 것이 아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함경선(원산-함흥-청진)-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의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즉 중간에 합류하는 일종의 지선 형태이다. 먼 훗날 국제열차가 운행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운행될지 궁금해졌다.





자루비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면서 본 선로와 역, 열차.

블라디보스토크 버스터미널이 시 외곽에 있기 때문에 시내로 가기 위해 택시나 버스, 트램을 타야한다. 택시 탈 경우 기사와 흥정을 해야하는데, 아까부터 나를 도와주었던 이영표 닮은 형이 흥정을 해주었다. 300루블이란다. 너무 비싼 것 같아(4시간 동안 버스탄 가격이 비슷) 트램이나 버스를 이용할 수는 없냐고 물었으나 영표 형도 시내 쪽으로는 노선을 잘 모른다. 여기저기 알아보러 분주히 다니는데 너무 미안해서 그냥 택시 탄다고 했다. 고맙다고 작별인사를 한 뒤 택시에 올랐다. 30여분 걸려 시내에 도착하다. 여기에 호텔이고 역이고 주요 시설들은 다 모여있다.

9월인데 방이야 쉽게 구할 수 있게지란 생각에 예약은 안 하고 갔다. 그런데 가는 호텔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당연 방은 없단다. 처음 프리모리예 호텔부터 시작해서 블라디보스톡 호텔과 모략 호텔까지 차례로 갔으나 없었다. 8시가 넘어 날은 어두워지고, 러시아에 대해 들은 것(스킨헤드라든지)은 많았던지라 무쟈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만 모략 호텔은 3000루블짜리 방은 있단다. 너무 비싸 다시 프리모리예로 가서 조금 더 비싼 방 없냐니까 여기는 아얘 방 자체가 없단다. 눈물을 머금고 모략으로 가서 3000루블짜리 잔다고 하고 카드를 내밀자 크레딧카드 안된단다. 언덕을 내려와 현금인출기에서 루블을 뽑아 다시 호텔로 가 체크인을 하는데 종이에 1100을 써준다. 뭐냐... 아까 말이 안통했던 것인지 아님 방이 있으면서도 없다고 한건지... 하여간 1100*2(이틀밤)+20(거주지등록)=2220루블로 이틀밤을 결재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참고로 프리모리예와 블라디보스톡 호텔의 경우 카운터에서 영어가 통했으나, 모략은 규모가 작고 급이 낮아서 그런지 카운터에 여자 한 명있는데 영어 안 통하고 무지 쌀쌀맞음. 내 방은 5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는 없다. 각층 마다 청소나 기타 잡무를 당담하는 아주머니 방이 있어서 그 아주머니께 영수증을 보이고 열쇠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짐을 풀자마자 시베리아 횡단열차 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KACCA라고 쓰여진 팻말을 따라 내려가니 플랫폼이고 열차들이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개집표를 하지 않고 열차내 검표를 하기 때문에 역사 내나 플랫폼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 여하튼 승강장으로 내려가 다시 역사로 들어가니 표를 파는 곳이 있다. 창구가 하나 밖에 없나 생각하고, 미리 행선지와 열차시간, 열차번호, 인원 등을 러시아 글자로 적어온 종이를 내보였다. 날짜와 시간, 가격을 계산해주더니 옆 창구로 가란다. 아 여기는 그냥 인포메이션이었고, 왼쪽 편에 매표 창구가 서너개 있다. 아까처럼 다시 종이를 보여주자 가격과 날짜, 시간을 써준다. 다행히 모레 떠나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N001로시야호, 9월 22일 13:15 블라디보스토크 → 9월 28일 17:42 모스크바, 09호차 K(쿠페-4인실), 16번 침대.
9341.6루블(약 374,000원)

어두운 거리를 지나 무사히 숙소로 돌아오니 9시 40분. 저녁은 커녕 점심도 거른 상태라 무지 배가 고팠다. 2층에 중국인이 하는 식당이 있어 갔으나 끝나는 분위기. 그래도 메뉴판을 주길레 받아보니 전부 한자라 이해를 못하겠다. 주인장한테 내 패스포트 보여주면서 한자 모르겠다고 하자 난감한 표정으로 뭐라뭐라 한다. 간단히 국수 같은거 먹고 싶어 영어로 누들이라고 물어봤으나 전혀 안 통함. 결국 주방으로 데려가더니 돼지고기랑 야채랑 보여주면서 이거로 뭐 어떻게 하겠다고 한다. 이거 바가지 쓰는거 아닌가 싶어 그냥 안먹겠다고 하고 나오자, 또 다른 주방 직원이 매점으로 데려다 준다. 러시아 아줌마한테 컵누들이라고 하며 후루룩 먹는 시늉해보이니까 컵라면 준다. 와~ 물을 부어 방에 올라오니 긴장이 다 풀린다. 너무 힘들었 던 하루. 티비를 틀고 기쁜 맘으로 컵라면 뚜껑을 연 순간. 라면이 아니었다. 무슨 감자죽 같은 것. 물은 다 쫄아 없어지고 죽처럼, 아니 진짜 죽이 되어있다. 느끼했으나 배가 고팠던지라 허겁지겁 먹었다. '비지니스 메뉴'라는 이름의 감자죽인데, 나중에 은근히 이거 맛들렸다. 그렇게 여행 둘째 날이 지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의 다다라 찍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다음 편에 계속..)

ⓒ Shinzino 2006 (http://blog.paran.com/station215)

posted by Gosanza S. 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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