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차 여행기 2005. 10. 9. 00:14

(1) 굿바이 구절리 기행1

2004년 9월 21일을 끝으로 정선선의 아우라지-구절리 간의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운 좋게도 이 구간의 최후의열차를 탈 수 있었다. 열차 출발을 약 15분 정도앞두고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예약한 표를 사서 5번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청량리발 강릉행 무궁화호 #1667 열차, 2호차 29호석, 객차는 대우산 우드객차, 기관차는 8204호 신형 전기기관차.

회기역을 지나 중앙선이 경원선과 분기되었다. 그런데 고가화 공사가 완료된 것인지 예전이랑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이제 중앙선에도 수도권전철이 개통되면 영업을 시작할 역들의 고상홈도 스쳐지나갔다.

국수역을 지날 때 반가운 통일호 객차들이 보였다.

사진에는 화차에 가려콩알 만하게 나왔지만...

아직도운행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14시 경, 약 10분을 연착하여 열차가 증산역에 도착하였다. 오늘이 구절리 마지막 운행이라 그런지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그렇긴 해도 휴일에 단체 관광객들을 위해 덧붙이는 무궁화 객차는 다행히 아니었다. "정선아리랑 유람열차 ~를 타고 출발합니다."안에 들어가니 사진기를 들고 계신 분도 여럿 보였다.

세 번째 정선선 방문이었다. 이전에 찍은 사진들도 있고, 아우라지 이후 구간만 아니면 앞으로도 또 올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그냥 여유를 가지고 음미하며 기차를 타기로 했다. 발전차가 객차와 기관차 사이에 붙어서 뒷배경을 볼 수 있었다. 자리를 왔다갔다 하며 사진을 찍는데 뒷문에서 열심히 사진(또는 캠코더)을 찍고 계신분이 있었다. 뒷문의 창이 작았기 때문에 서로 양해를 구하며 사진을 찍다가 제가 먼저 말을 걸었다. 서울에서 오셨어요? 아 그런데 알고보니 일본에서 오신 분이었다. 나는 일본어를, 그 분은 한국어를 못했기에 영어로 대화를 했다. 정선선은 6년 전에 와보고 두 번째 방문이란다.한국철도 노선도를 보여주면서 붉게 칠한 부분이 자기가 안 가본 노선이라는데, 장항선과 경북선 그리고 일부 노선 외에는 안 가본 노선이 없었다. 일본 국내와 대만의 철도도 많이 다니셨다고 하셨다.JR 동일본의 차량 연구소에 일하시는 엔지니어이신데, 자신이 일하는 곳과 시제차로 보이는 JR 열차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 나에게 주셨다. 마침 저도 이날 제천역에서 새벽 3시까지 밤 열차를 기다려야 했던지라 시간을 떼우기 위해 일본 JTB 시각표를 가져왔었는데, 그것 보여주면서 저도 일본철도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까 반가워하셨다. 그리고 선물이라며 세이부(西武) 철도의 전동차가 새겨진 패스네트 카드(정액권)도 주셨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드릴 게 없는데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그냥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나중에 나도 외국에 나간다면한국에 관련한 조그마한 선물을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표나 한국철도 사진, 뭐 그런 것어떨지... 이제 열차는 아우라지를 지나 구절리로 향한다.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곡선 반경이 작다는게 한눈으로도 보인다. 전국의 철도가 직선화되고 연선이 개발되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노선도 얼마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15시 10분에 열차는 구절리역에 도착했다. 날씨는 아까와 달리 아주 화창했다. 기관차 분리하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그 일본 분과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뭐 해드린 것도 없는데, 연신 서투룬 발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인사하시던 그분... 어쨌든 한국에서 좋은 추억 만들어가셨으면 좋겠다. 종착역인 구절리에 도착한 열차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15시 40분에 다시 증산 쪽으로 출발했다. 나는 곧열차가 왔던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구절리-아우라지 구간을 달리고 있는 열차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서!

구절리역, 기관차가 방향을 바꾸어 다시 증산 쪽으로 열차를 견인하기 위해 객차에서 분리되어 움직였다.

도로를 따라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걸어가니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있길레, 잠시 주저앉아 열차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기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숲 사이로 기관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되는 순간, 저는 셔터를 몇 번이고 눌러대었다.그리고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열차 내에서 차창 밖을 바라보던 사람들중 몇 명도 화답을 했다.

열차가 터널로 들어가자 저는 그걸 따라 잡겠다고, 터널 밖을 휘감아 도는 도로를 따라 마구 뛰었다. 물론 어림도 없는 일. 한 7, 8분 걸려 터널 반대 쪽에 도착했지만 이미 열차는 사라지고 공허함만이 남아있었다. 다시 왔던 길을 따라 터벅터벅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좀더 여유를 가지고 주변의 숲과 계곡을 감상했다. 자동차도 거의 안 다니는 정말 오지였다. 도로 변에는 자동차에 깔려 죽은 듯한 개구리나 뱀 등의 사체가 종종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환경이 깨끗한 곳이라는 것이겠지... 청설모도 발견했다. 그나마 야생 멧돼지가 안 튀어나와서 다행이었다.어떻게 이런 곳에 철도가 있을까. 이곳에서 정선선 철도는 외부 세계를 잇는 유일한 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 사진에 보이는 다리 위로 열차가 다닌다. 멋지지않습니까...

16시 25분 경, 다시 구절리 역에 도착했다. 아까와는 달리 역에는 아무도 없이 썰렁했다. 그리고 아우라지-구절리 구간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도 있었다.

시간이 넉넉한 것 같아 구절리역에서 2km 정도에 위치한 오장폭포에 갔다오기로 하였다. 구절리는 동네 자체가 매우 썰렁했다. 한 때는 탄광촌으로 번성했다지만 (그리고 그것이 정선선이 구절리까지 들어왔던 이유)지금은 쇠락해가는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민박집은 여러 개 보였지만 마땅히 혼자 먹을 만한 식당은 찾기 힘들어그냥 점심은 구절리역 앞구멍가게에서 산 콜라와 아틀라스로 떼우기로 했다. 마을을 지나자 좌측의계곡을 따라 인적 드문 도로가 계속 이어져 있었다. 점점 산이 깊어지고 날씨는 흐려졌다. 30분 가량 걷자 녹색의 아치 모양다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다리 옆에는 폭포가 있었다. 오장폭포-라고 써 있는 비석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차가 한 두 대 지나갔을 뿐 아무도 없었다. 폭포 앞에서 혼자 사진을 찍었다.

발길을 돌려 다시 구절리 역으로 향했다. 아까까지는 좋던 날씨였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철도 사진 찍을 때 제일싫어하는 날씨인데... 짙은 먹구름 때문인지, 원래 산간 지방이라 그런지날이 더 금방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이미 가로등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2) 굿바이 구절리 기행2

정선선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였다. 거기에는 차량 기지로 써도 될만큼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예전에 혹시 무슨 용도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궁금한 것은 애초에 구절리까지 정선선이 들어온 것이 탄광 때문인데, 그렇다면 탄광까지를 잇는 철길이 원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어쨌든 아래 사진과 같이 정선선이 끝나는 지점에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철길이 끝나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판과 무수한 잡초들만이 쓸쓸함을 더해간다.
그리고 우측 사진은 증산 기점 46.2km를 알려주는 표시판.

아무도 없는 정선선 종점 지점과 구절리역 플랫폼에서혼자 우산을 쓰고서 30분이 넘게 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없는 역에,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계속오고, 정말 처량한 느낌이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18시 반쯤 역에 저절로 불이 들어왔다. 비를 피하기 위해 역사 내에 있었는데 얼마 지나자 어떤 분(동호회에서 뵌 적있는 류** 님이었다!)께서 카메라를 들고 역으로 들어와 여기저기를 찍으셨다. 긴가민가 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나중에 메일 보내드리니 맞았단다.. -_-;

어쨌든 나는 열차를 기다리면서불이 켜진 구절리역을 찍었다.

19시 10분이 조금 지나 구절리행 마지막 열차가 들어왔다. 열차에서 또 철도애호가 몇 분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내리셔서 사진을 찍으셨다. 나도 열악한 장비를 가지고서 열차가 정차하고 있는 구절리역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담았다.

19시 25분,이제 열차가 구절리를 떠난다. 밤이라 창 밖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래서 더 담담했다. 카메라의 전원을 껐다. 오늘의 업무는 끝.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부족했던지라, 정선아리랑 유람열차의 테이블에 엎드려 잠시 잠을 청했다.

20시 30분, 열차가 종착역인 증산에 도착했다. 증산역 앞에도 마땅히 밥을 먹을 만한 곳이 없어, 그냥 슈퍼에서 제주 감귤 쥬스와 베이글 빵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20시 50분쯤, 제천행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정선아리랑 유람열차는 어느새 견인되고 안 보였다. 영주발 제천행 무궁화호 #1684 열차,1호차 37호석, 객차는 대우산 우드객차, 기관차는 8101호. 예전 도색을 하고 있는이 전기기관차를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열차 편성은 발전차-객차(2량)-기관차이고, 막차로서 정차역이 다른 무궁화보다 많은 일명 '통궁화호' 였다.

22시 반이 다 되어 제천에 도착했다. 우선은 역을 나와 밥 먹을 곳을 찾았다. 다행히 역전 광장에 홍익회에서 운영하는 스낵점이 보였다. 국수와 만두를 시켜서 먹으니 이제야 좀 든든하고 살 것 같다. 이제다음 날3시 반까지 시간을 떼워야 한다. 맞이방에 들어가 TV를 보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다, 친구와 잠시 전화도 하고 그러니 새벽 3시가 되었다. 강릉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1636 열차, 2호차 35호석, 객차는 역시 대우, 기관차는 8073호. 제천에서는 청량리로 가는 첫 열차다. 야간 열차라 여기저기 퍼져 자는 사람들이 보인다. 원래내 좌석에도 어떤 아줌마가 다리를 올리고 주무시길레 그냥 그 앞자리에 앉았다. 좌석에 앉자마자 잠에 골아떨어져 청량리역까지 한 번도 안깨고 갔다.

아침 6시 04분, 열차가 종착역인 청량리 역에 도착하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이제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의 아침. 분주한 서울의 모습. 정선선은 이제 기억 속의 한 구석으로 물러난다.

내가 사는동네인 성내역에 내렸다. 이 역 앞에는 얼마 전부터 재개발을 위해 시영아파트를 부수고 있는데 한번쯤 사진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몇 개를 올려 본다.구절리 기행 끝~

posted by Gosanza S. 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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