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철도 소개 2006. 12. 18. 13:48

영국 철도의 역사는 곧 철도의 역사 그 자체이다. 19세기 초, 영국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기관이 발명된다. 흔히 증기기관의 아버지로 조지 스티븐슨 Geroge Stephenson을 꼽으며, 그가 1825년 스톡턴-달링턴 간에 운행한 ‘로코모션’호는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증기기관차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잉글랜드 남서단 콘월주 태생의 기술자였던 리처드 트래비딕 Richard Trevithick은 1804년 웨일즈 남부의 마사티드빌에서 철물공장과 운하 사이에 화물열차를 투입하기 위해 증기기관차를 제작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의 모델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2004년 철도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당시 모습을 재연한 것만이 있을 뿐이다. 1809년에는 런던 북부의 유스턴 Euston (지금은 버진트레인 등이 출발하는 서해안간선의 종착역으로 도심의 일부이지만, 도심이 확장되기 이전인 당시에는 교외였다)의 들판에 ‘Catch Me If You Can(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이라는 이름의 증기기관차를 객차에 연결하여 원형 선로를 달리게 하였다. 이 유희 목적의 열차는 재미있는 이름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으나, 탈선사고로 사업은 곧 실패하였다.

트래비딕이 재능은 있으나 비즈니스에는 소질이 없는 천재형이었다면, 조지 스티븐슨은 그와 반대로 부단한 노력가였다. 증기기관을 처음 발명한 것은 트래비딕이지만, 실제 증기기관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잇는 것은 스티븐슨이다. 그는 남이 발명했던 것을 보완하여 발전시키고, 이를 실용화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1829년, 리버풀-맨체스터 간 철도의 개통을 1년 앞두고 증기기관차 공모전이 있었다. 여기서 스티븐슨의 ‘로켓트’호는 최후까지 완주하여 운행 열차로 선정되었고, 스티븐슨은 기술 분야의 최고책임자로 임명된다. 아들 로버트 스티븐슨 역시 철도 기술자로 이후 차량회사를 설립하여 큰 부를 이룬다. ‘로코모션’호는 달링턴 박물관에 실물이 남아있으나 ‘로켓트’호의 경우 재연한 모델만이 요크 국립철도박물관에 남아있다.

이렇게 19세기 영국 철도는 민간 자본이 주도가 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국영철도는 없었다. 이는 자유방임주의의 산물로 당시 영국의 국가정책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중소 철도회사가 난립하였으나,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따라 강한 회사만이 살아남아 점차 몇 개의 대규모 철도회사로 정리되어 간다. 한편 1840년대 후반, 철도를 유망한 성장 산업으로 본 서민들은 철도회사의 주식을 경쟁적으로 사들인다. 이러한 철도 붐은 곧 버블 붕괴로 이어지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이러한 현상을 ‘railway mania’ 라고 칭했는데, 지금의 ‘철도애호가’ 또는 ‘철도광’의 의미와는 매우 다르다.

19세기 말에 이르면 영국 전역의 철도회사는 몇 개의 대기업으로 정리된다. 이어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1에는 정부가 전국의 철도는 4개의 대기업으로 통합하는 법률을 가결시켜, 1923년 이후 일부 민간철도(런던과 지방도시의 지하철과 노면전차, 협궤철도 등)를 제외하고는 4개사로 통합 합병된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London & North Eastern Railway (LNER) : 런던 북동부와 동해안간선 운영
2) London Midland & Scottish Railway (LMSR) : 런던 북부와 서해안간선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지역 철도 운영.
3) Great Western Railway (GWR) : 런던 서부와 남서부 지역 철도 운영. 1921년 개정 전 회사명을 그대로 유지함.
4) Southern Railway (SR) : 런던 남부와 남동부 지역 철도 운영. 면적은 4개사 중 가장 적으나 인구밀도는 최대.

영국 민간철도의 4개사로의 통합은 런던을 중심으로 운영 지역이 나뉘었다는 점이 특징이며, 현재 일본철도 JR여객의 지역별 6개사 분할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인다. 특히 장거리를 운행하는 우등열차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런던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운영되었으며, 지방 간의 장거리, 이른바 cross country 는 매우 부족하였다. 일례로 영국의 대표적인 두 대학도시인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사이를 이동하려면 직접 가는 것보다 런던을 경유해 가는 것이 빠르다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1947년 노동당이 정권을 잡자 공약에 따라 국가기간산업을 국유화한다. 철도 역시 국유화가 진행되며, 1948년 4개의 민간철도 회사는 또다시 통합되어 영국국철 British Railway 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국철 통합 이후에도 지역관리국의 분류 방법은 4대 철도사의 운영 지역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단 스코틀랜드 지역의 경우 분리되어 별도의 관리국에서 운영하였다.

이렇게 50여 년간 지속된 국철의 시대는 세계적인 철도 민영화, 현대화 사업과 맞물려 1994년 막을 내린다. 영국국철은 30여 개의 민간 여객철도 회사로 나뉘어지며 다시 영국철도가 처음 탄생하였던 19세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다만 현재와 초창기의 영국철도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초창기에는 민간철도 회사가 직접 철도를 건설해 선로를 소유한 채로 운영까지 맡았다. 반면 현재 철도회사의 경우 여객 운영만을 당담하고 있으며, 인프라회사에 선로 이용료를 지불하고(이 점은 한국과 비슷), 차량 역시 임대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참고 자료)

- 支球の步き方 By Train ⑤ イギリス鐵道の旅, Diamond-Big, 2006.

- 위키피디아 사이트


Shinzinoⓒ2006 (http://blog.paran.com/station215/)

posted by Gosanza S. 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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