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zino의 유라시아 철도기행 2006'

3부 - 영국철도 탐방기 - 2 영국의 열차

<영국의 열차>

* 영국은 동차의 왕국

'동차의 왕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일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신칸센이 전동차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화물열차까지 동차화하는 나라이니.. 하지만 영국도 그에 못지 않은 동차의 왕국이다. 7, 80년대를 주름잡았던 간선 특급 IC125와 IC225, 여기에 야간열차와 화물열차 정도만 제외하면, 영국에서 운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여객열차는 동력분산식의 동차이다. 런던권을 비롯한 잉글랜드 남부 지역의 경우 전동차가 대세이지만, 맨체스터 정도를 경계로 그 이북 지역과 웨일즈, 콘웰처럼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경우 기동차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에서 동차가 발달한 이유는 아마도 대륙과는 고립된 지형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장거리를 달리는 국제열차보다는 근거리 여객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동차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참고로 열차의 통행 방향(좌측)과 대부분의 철도에서 고상홈을 쓴다는 점도 영국과 일본이 비슷하다. 철도 이외에도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은 두 나라(특히 국민성).. 영국을 유럽의 일본이라고 해야 하나, 일본을 아시아의 영국이라 해야 하나?


런던 근교 동부를 달리는 c2c 철도의 전동차


TransPennine Express의 신조 185계 디젤동차. 일종의 특급열차 역할을 하고 있다.


Northern Rail의 디젤동차. 지역 로컬선을 달린다.


* 리클라이닝 시트

한번은 칠턴 레일에서 다른 통근형 노선과 차별화한 일종의 특급열차인 'Clubman Car'(런던-버밍험 간 운행)를 타 보았다. 그러나 리클라이닝에 대한 기대는 무참히 깨졌고, 한국의 왠만한 시외버스 좌석보다도 딱딱한 좌석에 앉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영국에서 리클라이닝 시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에서는 그래도 ICE나 IC 같은 간선열차를 타면 리클라이닝 시트(KTX 처럼 몸으로 밀어내리는 식)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30여 년 간영국 간선열차의 왕좌를 지켜온 HST(구IC125)열차는 물론, 최근 도입된 틸팅열차인 390계 버진트레인을 타도 고정식 좌석 밖에 찾을 수 없었다.

물론 꼭 리클라이닝이 된다고 편한 좌석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종의 문화적 차이가 아닐지. 그렇지만 무궁화만 타도 리클라이닝이 되는 나라에서 KTX 같은 좌석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으리라 본다. 그렇게 욕하는 KTX 좌석이 얼마나 편한 자리인지, 영국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도 딱 한 번 리클라이닝에 앉은 적이 있다. 스코틀랜드와 런던을 잇는 야간열차인 '칼레도니아 익스프레스'의 좌석차를 이용했는데, 2+1 배열에 모양도 KTX 특실에서 쓰는 좌석 그대로 였다. 정말 여기에 앉자마자 잠이 들어 왠만한 침대열차보다 푹 자고 내린 기억이 난다.


Chiltern Railways의 168계 디젤동차.

런던- 버밍엄 구간에서 'Clubman Car'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특급 서비스를 제공한다.

Clubman Car의 좌석. 나름 고급화를 시도했으나 리클라이닝이 안 되는 딱딱한 의자다.


히드로 익스프레스의 1등실. 좌석은 한 층더 고급스러워 보이나 역시 고정식이다.



런던 근교의 광역철도에는 이렇게 2+3배열의 좌석도 많다.

형편없이 불편한 좌석이라기 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이 앉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닐까?

서울-천안 95km 2시간 코스를 롱시트로 운행하고 있는 것에 비교해 본다면 말이다..


* 문 여는 방식

우리나라에서는 열차가 역에 도착하면, 차장 혹은 기관사에 의해 모든 객차의 출입문이 일률적으로 열리고 닫힌다. 반면 영국에서는 승객이 직접 출입문에 있는 버튼을 눌러 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출입문의 안과 밖에 각각 버튼이 있는데, 열차가 역에 도착하면 곧 이 버튼이 깜빡거리고 이 때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리는 것이다(오직 버튼이 깜빡거릴 때만 열리며 주행 도중 문을 열거나 할 수는 없다). 물론 닫힐 때에는 자동으로 한 번에 닫힌다. 이러한 방식은 유럽에서 널리쓰이고 있으며(독일의 경우 대부분의 차량이 이런 방식), 일본의 홋카이도와 동북지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런던 지하철의 경우에도 일부 서울과 같은 방식이 쓰이기도 하지만 상당수가 버튼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 승객이 적게 내리고 타는 역에서 열리는 문의 수를 줄여, 객차 내 냉난방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것이 일본의 추운 지방에서 쓰이는 이유이다. 이외에도 문을 여닫는데 드는 에너지를 다소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설치 비용이 든다는 점과, 혼잡도가 높은 구간이라면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은 약점도 있다. 대부분이 지상 구간인 수도권전철, 특히 최근 도입을 시작한 교류전용 6000대 전동차에 이러한 방식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애초에 전동차를 설계할 때 이 방식을 적용한다면 설치 비용도 줄일 수 있을텐데.. 간혹 수도권전철이나 지하철의 지상역에서 추운 겨울 날 신호정지로 장시간 정차하고 있을 때, 전동차의 문을 두 개만 열고 두 개는 닫아놓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버튼 방식으로 한다면 참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영국에서는 버튼 방식 외에 'slam door'라고 하는 직접 손으로 문을 여닫는 방식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호를 끝으로 사라진 방식이지만, 영국의 경우 아직도 상당수의 차량에서 사용되고 있다. 동차(Multiple Unit)의 경우 런던 남부를 중심으로 오래된 차량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퇴역한 상태이다. 반면 객차에서는 슬램도어가 여전히 건재하다. 영국의 객차는 시대별로 Mark1 ~ 4까지 나뉘는데, 현재 야간열차에서 쓰이는 Mark2, 3과 IC125에서 쓰이고 있는 Mark3에는 여전히 슬램도어가 쓰이고 있다.(IC225는 신형 Mark4 객차로 슬라이딩도어)

필자가 경험한 것은 구 IC125열차와 야간열차에서 였다. 재미있는 것은 일부 슬램도어의 경우 밖에서만 열 수 있다는 점이다(통일호는 양반이다). 그럼 내릴 때는 어떻게 하느냐? 문에 달린 창문을 내려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서 연다. 한번은 야간열차를 타고 역에 도착했는데 필자가 못 열고 낑낑대자 뒤에 있던 아저씨가 열어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런 문을 쓰는 객차가 통일호처럼 낡고 오래된 서민용 차량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물론 점차 이런 방식이 사라져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최고시속 200km/h 열차를 승객이 창문 열고 문 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언바란스 아닌가. 아무리 전통을 중시한다는 나라지만, 참 어떻게보면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Midland Mainline 소속의 IC125열차. Mark3형 객차로 손으로 여닫는 식의 슬램도어다.


IC125 객차출입문의 창문. BR(구 영국국철)마크가 선명하다.

200km/h의 고속 운행을 하는 열차임에도 창문을 내릴 수 있게 한 것은 출입문 때문이었다.

지금은 많이 개조가 되어있으나, 원래 승객이 내리기 위해서는 저 창문을 내려 손을 밖으로 내밀어 출입문을 열어야 했다.


열리는 창문 덕분에 이런 사진도 가능하다(위험하므로 주의해야).


Mark2나 Mark3형의 객차를 쓰고 있는 야간열차에서도 슬램도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차의 경우 슬램도어를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사진은 Arriva WalesTrains에 한 편성 남은 121계 디젤동차.

1960년 산으로 슬램도어를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동차 중 하나이다.

(다음 편에 계속..)

ⓒ Shinzino 2006 (http://blog.paran.com/station215)

posted by Gosanza S. 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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