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여객 열차의 등급을 바탕으로, 열차들이 가지고 있던 명칭을 살펴보고자 한다. 1984년에 ‘새마을호-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의 등급 체계로 개정되면서, 현재는 열차 명칭이 그 열차의 등급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한국 철도는 ‘특급-보급-보통’이라는 등급을 토대로, 각 열차마다 고유한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모든 열차가 명칭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특급을 중심으로 철도청이 내세울 만한 열차나 특정한 목적을 지닌 열차에 명칭이 붙었다. 지금 보기에는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명칭도 있으나, 의외로 아름답고 낭만을 간직한 명칭도 있다. 특히 열차의 명칭에는 그 시기의 시대상을 반영되거나 그 열차가 다니는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어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① 1945년 이전

철도가 처음 생긴 후 광복 이전까지 몇몇 열차들의 명칭을 철도와 관련한 주요 사건들과 함께 <표1>로 정리해 보았다.

1905.1.

경부선 개통(서대문-초량), 17시간대에 여객 운행

1905.5.1.

직통급행 12시간대 운행 (서대문-초량)

1906.4.16.

융희호 운행 (경부선)

1908.

융희호 신의주까지 연장 운행

1911.11.1.

부산-봉천(만주)간 직통열차 운행

1926.10.

서울-목포 직통열차 운행

1933.4.1.

부산-봉천(만주)간 직통급행 히카리호 운행

1934.11.1

한·만열차시각개정 급행 노조미호 봉천까지 연장

1935.10.1.

철도박물관 설치

1936.12.1.

특급 아까스키호 6시간대 운행 (경부선)

1939.11.1

부산∼베이징간 직통급행 흥아호, 대륙호 운행

<표1> 광복 이전 열차의 명칭과 주요 사건
(월간 『한국철도』 1978년 9월호. 1984년 9월호. 1984년 12월호. 와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사업 홈페이지』(http://www.korail.go.kr/2003/100th/index.html)를 토대로 작성.)

1899년 한국철도의 첫 개통과 함께 여객열차가 운행되었고, 곧이어 경부선과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서대문과 초량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급행열차도 등장하였는데, 열차 이름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를 딴 융희호였다. 한일합방으로 국권을 일본에 빼앗긴 뒤, 철도 노선이 많이 확장되고, 여객열차도 많이 늘어났다. 1930년대에 등장했던 열차의 이름으로는 히카리(光)호, 노조미(望)호, 대륙(大陸)호, 흥아(興亞)호 등이 있다. 모두 당시의 국제 급행열차로서, 모두 부산을 출발하여 만주나 중국을 오가던 열차이다. 또한 1936년에 등장한 아까스키(曉, 새벽)호는 경성(서울)-부산 간을 6시간대에 주파한 당시 조선 최고의 급행열차였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건설된 신칸센의 열차명에도 노조미, 히카리호가 그대로 쓰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만큼 당시 조선은 일본에게 있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요한 길목이었고, 이 열차들도 일본 국내의 열차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부산에서 출발하던 많은 국제열차들이 부관연락선(당시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던 중요 여객선)의 시간에 맞추어 발착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조선의 철도는 동아시아 전체를 차지하고자 했던 일제의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이 점에서 흥아(興亞)호나 대륙(大陸)호와 같은 열차 이름이 나온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참고자료)
철도차량기술검정단, 『한국철도차량 100년사 : 철도창설 100주년 기념』, (서울 : 철도차량기술검정단, 1999).
고바야시 히데오, 『만철 :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임성모 역, (서울 : 산처럼, 2004).

② 1945년-1963년

이 시기 경부선과 호남선에 등장했던 주요 특급과 일부 급행열차의 명칭을 다음의 <표2>로 정리했다.

년도

경부선

호남선

1946.5.27

특급 해방자호

9.1

급행 무궁화호

급행 삼천리호

1955.8.15

특급 통일호

1960.2.1

특급 무궁화호

1962

특급 재건호

특급 태극호

1963.3.

특급 약진호

<표2> 주요 열차의 명칭 (광복 이후~1963년)

이 열차들의 명칭에도 역시 광복과 동란, 그리고 전후 재건이라는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해방 직후의 기쁨을 담은 ‘해방자호(The Korean Liberator)’, 한국전쟁 이후 통일에 대한 바람을 담은 ‘통일호’,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시대적 구호가 되었던 ‘재건’이나 ‘약진’이라는 명칭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무궁화호’나 ‘통일호’는 지금도 쓰이는 열차 명칭이기 때문에 익숙하지만(완전 완행열차로 전락해 버린 지금의 통일호와는 전혀 상관없는 열차이다), ‘해방자호’나 ‘삼천리호’ 같은 명칭은 매우 낯설다. 통일호나 재건호의 경우 60년대 말까지 운행되었으며, 이 중 통일호와 무궁화호라는 명칭은 1984년 열차 명칭 개정 때 다시 등장하게 된다. 한편 호남선에서는 1962년 운행을 시작한 특급열차가 태극호라는 이름으로 서울과 목포를 8시간대에 연결시킨다.


(참고자료)
철도청, 『한국 철도』, (철도청, 1970년 6월, 1978년 9월).

③ 1963년-1974년

1963년 철도청이 발족하고 1974년 수도권전철의 개통과 함께 노선별로 열차 명칭이 통일되는 대대적인 개편이 있기까지, 다양한 명칭이 열차들에 부여되었다. 지금이야 새마을호, 무궁화호 하면 그 자체가 열차의 등급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지만, 당시에는 열차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명명식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표3>은 당시에 등장했던 주요 열차들의 명칭이다.

년도

명칭

특징

1966

특급 맹호호(경부선/7.21),
특급 백마호(호남선/11.21), 특급 청룡호(서울-대전/11.21)

신설.청룡호는 1967.9.1에 부산진까지 연장됨.

1967

특급 비둘기호(경부선/9.1), 특급 갈매기호(경부선)

신설

1968

보급 동해호보급 십자성호(서울-강릉/4.1)
피서특급 파도호(경부선/7.16), 피서준급 대천호(장항선/7.16)

신설

1969

특급 관광호(경부선 초특급)

신설

보급 청룡호, 평화호, 야간보급 여명호, 은하호

경부선 보급 운행 현황(4.1)

1970

전국순환열차, 동부순환열차 신설(4.1)

1971

신라호(대구-울산/1.20), 특급 계룡호(서울-대전/2.10), 특급 충무호(서울-진주/3.15)

신설

서울-영주간 #129,130 특급열차 신설(영주-김천-서울간 운행/5.16)

6시간 45분 소요

1972

특급 태극2호(서울-광주/2.21)

신설

부산-경주간 특별관광열차 신설(4.2)

보급요금, 2시간 소요

특급 관광1~3호(초특급), 특급 비둘기1~3호(오전), 특급 통일1~3호(오후), 특급 충무호(서울-진주), 침대특급 은하호

경부선 특급 운행 현황(5.1)

특급 상록호(경부선), 특급 풍년호(전라선)

등장 년도 불분명

1974

새마을호(경부선 초특급), 특급 통일호(경부선), 특급 풍년호(호남선), 특급 증산호(전라선), 특급 약진호(중앙선), 특급 부흥호(장항선)

각선 명칭 개정, 통합(8.15)

<표3>1963년~1974년 사이의 열차 명칭
(월간 학국철도 1966년 3월호 ~ 1972년 12월호를 토대로 작성.)

1966년 등장한 특급 맹호호나 백마호, 청룡호는 월남전에 파병된 부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맹호 부대의 이름을 따서 만든 맹호호 같은 경우 새마을호의 전신인 관광호가 등장하기 전까지, 경부간을 5시간대에 주파하는 주력 특급이었다. 1967년 특급 비둘기호나, 1968년 동해호에서 이름을 바꾼 보급 십자성호 역시 월남전 파병부대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열차의 명칭을 통해, 모든 것이 군사 정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비록 현재의 비둘기호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해도, 흔히 평화를 상징한다고 생각되 온 비둘기호의 명칭 유래가 군사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역시 놀랍다. 이 밖에도 통일호, 약진호, 증산호, 부흥호 같은 열차명은 정치적 성격이 강한 예이다. 무궁화호나 태극호처럼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한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열차가 다니는 지역의 특성을 따서 지은 명칭도 있었다. 부산을 기점으로 하는 열차인 갈매기호나, 서울-진주간 특급 충무호, 대구-울산간의 신라호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곡창 지대인 호남 평야를 염두에 두고 만든 듯 한 전라선의 풍년호, 대전에 위치한 계룡산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계룡호도 있다. 대천호나 동해호처럼 아예 지명 자체를 열차명에 이용한 예도 있다.

또 하나의 유형으로는 기차의 목적과 용도에 맞추어 명칭을 지은 경우이다. 1968년 여름 피서객의 수송을 위해 서울-부산진간에 신설된 특급 파도호나, 야간보급열차인 여명호, 침대특급 은하호 등이 그러한 예이다. 파도는 피서의 성격을 잘 상징해주고 있고, 은하나 여명의 경우도 밤 열차의 특성을 잘 살린 이름이라고 본다.


1966년, 특급 맹호호의 명명식 모습. 월남전에 파견된 맹호부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열차이다.
맹호호를 이끄는 4014호 디젤 기관차에 화환이 걸려있다.
새마을호의 전신인 관광호가 등장하기 전까지, 경부간을 5시간대에 주파하는 주력 특급이었다.
(월간 한국철도 1966년 12월호)


서울-광주간을 운행했던 특급 백마호의 모습.그런데 아무리 눈을 비비고 보아도 동차이다.
이런 장거리의 특급에서 통근형 디젤동차가 사용된 것은 한국 철도에서는 드문 일이라 매우 흥미롭다.
(월간 한국철도 1966년 12월호)


1966년, 서울-대전간 특급으로 태어난청룡호. 우측 사진은 부산진까지 연장되었던 다음 해의 장면이다.
(월간 한국철도 1966년 12월호, 1967년 9월호)


1967년, 특급 비둘기호의 명명식 장면. 역시 월남전에 파병된 군부대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몇 년전까지 운행되었던 로컬열차 비둘기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열차지만,
'비둘기'라는 명칭이 처음 쓰여진 배경에는 어쨌든 군사정권 시대의 문화가 녹아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월간 한국철도 1967년 9월호)

1968년, 동해호에서 이름을 바꾼 보급 십자성호 명명식에 대한 기사.
이로서 월남전 파병부대 이름이 모두 열차이름으로 쓰였다고 한다.
열차 이름까지도 군사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는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어쨌든십자성호란이름은, 산악을 달리는 중앙선, 영동선과도잘 어울리는 멋진 이름 같다.
(월간 한국철도 1968년 4월호)


1968년 여름, 피서객의 수송을 위해 서울-부산진간에 신설된 특급 파도호의 모습.
기차의 목적과 잘 맞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월간 한국철도 1968년 7월호)


같은 날짜에 신설된 준급 대천호의 뒷 객차 부분.

개인적으로도 대천해수욕장을 좋아한다. 저 이름이 다시 부활했으면...
(월간 한국철도 1968년 7월호)


1969년, 새마을호의 전신인 특급 관광호가 첫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특급이긴 하지만 정차역도 '서울-대전-대구-부산'으로 매우 제한적이고, 운임도 보통 특급과는 달랐다.
고속도로와 대결하기 위한 철도청의 야심작이었다. 이것은 뒷부분인 발전차의 모습이다.
(월간 한국철도 1969년 2월호)

한편 1970년에는 전국순환열차와 동부순환열차가 신설된다.전국순환열차는 서울-대전-대구-진주-순천-이리-서울까지 998km를 19시간 30분에 잇는 열차이고, 동부순환열차는 서울-대전-대구-경주-울산까지 512km를 8시간에 운행하는 열차이다. 전국순환열차가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좁은 땅에 19시간 동안 달리는 기차가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이 열차들에게 명칭은 따로 없었던 듯하다.


1971년신설된, 서울과 대전을 잇는 특급 계룡호의 모습.
대전 근처에 계룡산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름대로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 이름이라고 본다.
같은 해의 다음 달에는 서울-진주간 특급 충무호가 신설되었다.
(월간 한국철도 1971년 2월호)


1972년 신설된 태극2호의 모습. 기존의 호남선 열차는 목포까지의 열차에 객차를 연결하여 송정리에서
기관차를 갈아달았으나, 이 열차는 광주까지 직통으로 연결된 최초의 여객열차였다.
이로서 서울-광주 간이 6시간으로 좁혀졌다.
(월간 한국철도 1972년 3월호)

④ 1974년 이후

1974년 8월 15일 수도권전철이 최초로 개통됨과 함께, 열차의 명칭과 다이어가 대대적으로 개정된다. 특히 이때까지 다양하게 존재하였던 특급, 보급열차의 명칭들이 <그림1>과 같이 각 선별로 통합되어 운영된다.


<그림1>월간 한국철도 뒷표지에 실린 열차명칭변경 안내.
(철도청, 『한국 철도』, (철도청, 1974년 8월), 뒤표지.)

이외에도 서울-마산, 진주간을 운행했던 특급 협동호와 부산-강릉간을 운행한 특급 부강호가 있었다. 이렇게 1970년대까지 존재하였던 열차명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거의 의미를 잃게 된다. 새마을호를 제외한 모든 열차들이 따로 명칭 없이 ‘우등-특급-보통’으로 불리게 된다. 이어 1984년 열차 명칭 개정으로 명칭이 등급을 의미하는 ‘새마을호-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 체계가 확립되면서, 다양한 명칭이 열차에 사용되던 시대가 끝난다.

copyright ⓒ 2005 Shinzino

posted by Gosanza S. 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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