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재 열차 명칭 체계의 문제점

현재 한국철도에는 열차 이름이 없다. 물론KTX나 새마을호 같은 것은 이름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정확히 말해 열차의 등급을 나타내어 주는 것이지, 개별적인 열차 명칭으로 보기 힘들다. 즉,열차 이름이 열차의 등급과 일치하기 때문에 별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본것이다. 오늘날의 'KTX-새마을호-무궁화호-통근'의 열차 체계는 기본적으로는 지난 1984년에 정해진 등급 체계(새마을호-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에 기초하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철도의 체계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기존의 등급 체계는 실제와 잘 맞지 않으며, 열차 등급과 명칭 체계를 정비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전에도 여객 열차의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철도청은 여러 차례 열차 명칭 개정안을 내놓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결국 ‘고속열차는 K-Star로, 새마을호는 태극호, 무궁화는 누리아호’ 등으로 결정하였으나, 시민들과 철도애호가들의 낮은 호응과 많은 반발을 받고 변경을 취소하였다. 이 문제의 원인은 철도청이 등급과 체계, 명칭에 대한 근본적인 고려 없이, 단순히 현재의 체계를 고수한 채 명칭만 편하게 고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여객 열차의 등급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언젠가부터 회사 이름이나 상품명 등에 참신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각광받아왔고, 심지어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처럼 정치 단체에까지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한글 이름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경향이다. 이러한 명칭의 경우 대개는 참신한 느낌을 주고, 기존의 안 좋은 이미지들을 덮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년 전 철도의 등급을 정할 때에도 이러한 점이 작용하였던 것 같다. 무궁화, 통일, 비둘기와 같은 철도의 등급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들이 우등이나 특급, 보통이라는 보통명사를 제치고, 한국철도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등급 명칭이 되었다. 이러한 체계를 도입한 데에는 철도 이미지 개선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열차의 등급과 명칭을 합치시켜 이용자들의 이해를 쉽게 하고자하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문제점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명칭들은 그것이 가진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급, 급행, 직행, 우등, 간선 또는 고속 등과 같이 실제 용도와 수준을 반영하는 단어들로 열차를 구별할 경우, 그 단어 자체로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세월이 지나도 하나의 보통명사화 되어 그 의미가 보다 명확해지고, 인식하기가 쉽다. 반면 새마을이나 무궁화 같은 명칭은 그렇지 못하다. 물론 한국인들에게는 오랫동안 각인 되어 왔기 때문에 새마을호가 고급열차이고 통일호가 로컬열차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설명이 없이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최근에 바뀐 서울의 버스 등급 체계가 ‘간선-지선-순환-광역’의 이름이 아니라, ‘참새 버스, 국화 버스, 참여 버스’와 같이 바뀌었다면 얼마나 이해하기도 어려웠을까? 뿐만 아니라 이러한 단어들은 의미가 불명확하고(나름대로 의미를 지녔다 해도), 실제 등급과의 관련성도 적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 여객 체계나 사회, 문화가 바뀐다면 그 때가서 또 바꾸어야 할 것이다. 통일호를 폐지시키고 '통근'열차라는 명칭으로 쓰기로 한 것도 새마을-무궁화 식의 단일 명칭 체계가 한계에 왔음을 보여준다.

전국의 여러 여객 열차들이 하나의 명칭을 쓴다는 자체도 문제이다. 물론 ‘새마을’이라는 명칭의 경우 그 본질적인 의미를 넘어서 정치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전부터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의미 여부를 떠나 그러한 이름도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열차명으로 쓰는 것에 굳이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전국에 있는 동급의 모든 열차들이 ‘새마을’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새마을이 등급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단어가 아닌 이상 적합하지 않다. 이것은 비단 새마을뿐만 아니라, 무궁화, 통일 등에도 역시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2003년 철도청의 계획처럼 단지 새마을호를 태극호로 바꾸는 것 정도로 철도 이미지가 크게 개선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민주화되고 다원화된 한국 사회의 모습과 세련된 철도의 이미지를 담고자 했을지 모르지만, 전국의 열차가 단지 관이 정해준 하나의 이름으로 다니고 있는 이상 철도는 기존의 이미지를 벗기 힘들 것이다.

2. 열차 이름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

1)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 등급 명칭 확보

등급의 경우 보편성을 지닌 명칭으로 환원시키고, 대신 명칭은 보다 자유롭고 다양하게 지어져야 한다. 열차의 등급은 열차의 명칭과 별개로 다루어져야 한다. 실제 과거 한국철도가 그랬고, 대부분의 외국철도 역시 ‘특급 ~호’, ‘EC ~호’와 같은 식으로 등급과 명칭을 구분하고 있다. 이 점은 2005년 한국철도의 공사 체제 출범과 함께 추구할 새로운 운영과 이미지를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본인은 다른 글에서 KTX+ITX(Intercity Train eXpress, 기존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를 통합한 재래선 장거리열차, 이하 ITX로 통칭)의 간선열차 체계에 지역+광역열차의 등급체계를 도입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이렇게 되면 ITX나 지역처럼 등급은 등급대로 가지면서 열차의 명칭은 별개로 가질 수 있다.


열차 등급 개편의 개요

2) 열차 명칭 체계

열차에 명칭을 부여하는 체계를 도입한다고 해도 모든 열차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수도권전철처럼 편성 수가 많고 운행 시격이 짧아 사람들이 각각의 편성에 신경 쓰지 않고 타는 경우 열차는 그냥 ‘광역’이라는 등급으로 불리면 될 것이다. 반면 ITX나 지역열차의 경우 노선에 따라 다양한 열차가 존재하고 편성 수가 적기 때문에비교적 쉽게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ITX라도 하루에 여러 편성이 같은 구간을 왕복하는 경우 각각의 열차에 다른 이름을 부여하면사람들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이것은 같은 구간을 왕복하는 편성이 많고 균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KTX 역시 마찬가지여서, 별도의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필요하다. 이 경우 열차를 종류에 따라 분류하여, 같은 유형에 속하는 열차는 같은 명칭을 붙이면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차례에 따라 열차를 분류하여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a. 노선에 따라

b. 행선지에 따라

c. 열차의 용도에 따라

d. 차량 모델에 따라

우선 크게 노선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난 1974년 한국철도에서 행했던 체계와 비슷한데, 경부선 특급은 통일호, 호남선 특급은 풍년호 등으로 통합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노선을 달리는 열차라고 해도 행선지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부여할 수 있다. 당시 서울-부산간 열차는 통일호로, 서울-진주간 열차는 협동호로 명칭을 다르게 부여했던 예를 들 수 있다. c.와 같이 열차의 용도에 따라 명칭을 더 세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야간열차나 침대객차를 편성한 경우 독립적인 명칭을 통해 같은 노선상의 다른 열차들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량 모델에 따라 다른 명칭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성능이 향상된 신조 차량이 투입되는 경우 같은 특급의 등급이라도, 다른 열차명을 부여하여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같은 명칭을 가지고 있는 다른 편성의 열차는 숫자를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TX 무궁화 1호’, ‘무궁화 2호’와 같이 숫자를 통해 구분한다. 물론 기존에 사용되었던 ‘KTX #103’, ‘무궁화호 #1206’과 같은 열차번호의 경우 열차 명칭과는 별개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아래 그림과 같은 형태로 한 열차를 표현할 수 있다.


새로운 명칭 체계에 따른 열차 표현

이러한 명칭 체계를 시각표에 나타낼 때에는, 1979년 당시의 시각표에서 그 방법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열차 등급과 명칭, 번호가 기재된 옛 시각표
(출처: 철도여행문화사, 『(월간) 관광교통 시각표』, 통권호(철도여행문화사, 1979년 9월).)

물론 이렇게 등급과 열차 명칭을 구분할 경우, 초기에는 이용자들이 인식하는데 혼란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모두 지금과 같이 등급만으로 사용하고, 세부 명칭이나 애칭 정도로 이러한 이름들을 사용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새마을호 제~열차'라는 식의 체계에 명칭만 추가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3)열차의 명칭 결정 기준

열차의 구체적인 명칭으로 어떤 것이 적합할까 하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종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일 명칭체계가 아니라고 한다면, 열차가 운행하는 각 지역과 노선에 따라 자유롭고 다양한 열차 명칭이 가능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해본다.

a. 자연이나 사물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단어들

b. 열차가 운행하는 지역이나 행선지의 특성을 띈 것

-그 지역과 관련된 지명, 특산물, 유적, 인물, 유물 등

c. 한국의 전통이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들

d. 열차의 용도에 관련한 것

a.에서 제시했듯이 개나리, 제비, 소나무, 북극성 등과 같은 일반적인 사물을 열차 이름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b.에서처럼 열차가 목적지로 하는 지역의 특성을 열차 명칭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호남선 열차의 경우 평야가 많은 전라도 지역의 특성을 살려 ‘지평선호', 푸른 동해를 끼고 달리는 영동선 열차의 경우 ‘딥 블루(Deep Blue)호’ 등으로 명칭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c.와 같이 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들, 예를 들어 ‘무궁화호’, ‘태극호’ 같은 것이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d.에서 제시하였듯이, 열차의 용도를 나타내는 용어도 명칭으로 가능하다. 야간열차는 그 특성을 부각시켜 ‘여명호’, ‘은하호’ 등이, 여름철 피서열차로 특별 편성된 경우 ‘파도호’, ‘갈매기호’ 등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열차의 명칭을 쓰면 몇몇 제한된 명칭을 택함으로써 생기는 논란의 여지를 막고, 애호가들이나 일반인들의 철도에 대한 흥미를 이끌 수 있다. 또한 지역의 특성을 부각시키고 홍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방 자치의 시대적 흐름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copyright ⓒ 2005 Shinzino

posted by Gosanza S. 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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