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963년 철도청 발족 이전

1899년 9월 18일,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노량진-제물포 구간이 개통되었고, 이어 1905년에는 첫 장거리 노선인 경부선이 개통되었다. 이 당시 여객 등급 체계는 ‘완행’(명칭 없이 숫자를 이용해 ~열차로 불림)과 ‘급행’의 단순한 구분만이 있었다. 또한 장거리 노선에서 갈아탈 필요 없이 목적지까지 이어질 경우에는, ‘직통급행 히카리호’에서와 같은 ‘직통’이라는 어휘를 덧붙였다. 당시 상황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러한 등급 체계에는 일본의 영향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현재까지도 ‘급행-준급행-완행’의 여객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해방이 되었지만 곧 남북간 철도 운행이 중단되었고, 만주나 중국 등으로 가는 급행열차 역시 운행이 중단되었다. 1946년 급행 해방자호가 경부간을 11시간에 운행하며, 다른 노선에도 몇몇 급행열차가 운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은, 완행과 급행을 기본으로 한 일제 시대의 등급 체계가 그대로 이어졌다. 해방 당시 물자 부족으로 거의 대부분의 노선에서 2왕복 이내의 열차만이 운행하는 사정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등급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또한 아직 한국의 산업화나 대도시화가 진행되기 이전이라는 점, 여객 서비스의 개념이 희박했다는 점, 그리고 전기철도 기술이 전무했다는 점 등을 살펴볼 때, 이 이상의 세분화된 등급체계는 의미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전쟁으로 철도 운행도 전시체제를 맞지만, 휴전 이후 점차 열차의 속도가 향상되고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1950년대에 여객 열차는 ‘특급-보급-준급-보통’의 등급으로 체계화된다. 경부선에는 여러 명칭을 지닌 특급이 등장하며, 이어 다른 노선에도 특급열차가 운행하게 된다.


<그림1> 특급 해방자호의 증기기관차. (월간 한국철도 1978년 9월호)

(참고자료)
철도청, 『한국철도100년사』, (서울 : 철도청, 1999).
학민사 편집실, 『북한에 가고 싶다. 1 : 그 땅과 인간의 삶』, (서울 : 학민사, 1995).

② 1963년 철도청 이후, 새마을호의 등장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산하의 철도청이 발족한다. 당시의 열차는 1950년대의 체계를 그대로 잇고 있었는데, 크게 급행과 완행(보통)으로 나뉘었고, 급행에는 특별급행(특급)과 보통급행(보급)이 있었다. 쉬운 이해를 위해, 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열차 등급의 변화를 <그림2>로 나타내어 보았다. 참고로 1984년에 열차 명칭이 현재와 같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그림2>의 열차 등급과는 별개로 열차의 명칭이 존재하였다. 특급 이상의 열차에 ‘특급 풍년호’와 같은 명칭이 존재하였으며, 보급이나 보통 열차에는 명칭이 존재하지 않고 ‘제 161, 162 열차’와 같이 열차번호만이 사용되었다.

<그림2> 1963년 이후 한국철도 열차 등급의 변화

(『한국 철도』 1964년6월~1984년1월호와 『관광교통 시각표』 1979년9월~1986년10월호를 토대로 작성.)

<그림2>와 같이 60년대 후반까지 한국철도는 '특급-보급(경부, 호남, 전라선 이외의 단거리 노선에서는 준급)-보통' ' 의 등급 체계로 운영되었다. 특급의 경우 다양한 명칭의 열차들이 서울 부산간 시간 단축 경쟁을 하였다. 그런데 60년대 말 고속도로가 건설됨에 따라,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철도 개혁에 대한 기나긴 논의가 이 때에 시작된다. 많은 이들이 철도의 서비스와 속도의 개선이 없이는 그 간 독점해왔던 육상교통의 수요를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1969년에 등장한 것이 특급 관광호이다. 관광호는 당시로서 최고의 속도와 최고급 서비스로 무장한 철도청의 자존심이었다. 관광호는 다른 특급들과는 차별화하여 운임이 책정되었고, 경부선의 서울-대전-동대구-부산에서만 정차하였으며(현재의 KTX보다 정차역이 더 적음), 최고급 열차로서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각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시승식을 갖기도 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고속철도 KTX의 개통 때와도 비슷한 느낌을 들게 한다. 곧 관광호는 그 자체로 고유의 등급이 되었고(때로는 ‘초특급’의 등급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 후 1974년에는 새마을호로 명칭을 바꾸어 약 35년간 한국 최고의 특급 열차로 운영된다.


<그림3, 4>특급 열차의 명칭별로 정리된 서울역의 티켓 창구. (월간 한국철도 1965년 8월호)



<그림5>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월간 한국철도 1970년 7월호)


<그림6>1973년 7월 호남,전라선 특급열차 티켓 창구. (월간 한국철도 1973년 1월호)

(참고자료)
철도청, 『한국 철도』, (철도청, 1969년 1월), p.78.
철도청, 『한국 철도』, 통권123호(철도청, 1977년 9월), 뒤표지.

③ 무궁화호의 등장

1977년에는 우등열차라는 새로운 등급의 열차가 신설된다. 새마을호를 이용하기는 부담스럽지만, 특급보다는 개선된 서비스를 원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전기식 냉방 설비를 갖춘 우등열차를 운행한 것이다. 실제로 1979년 당시의 시각표를 보면 우등과 특급 사이에 정차역과 소요 시간이 크게 차이가 안 나는 것으로 보아, 열차의 속도 측면보다는 시설 개선에 주안점을 두어 차후에 특급을 대체하도록 신설된 등급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후 우등열차는 무궁화호로 변경되었고, 한국 철도 간선의 주력 열차가 되었다. 비록 KTX 개통으로 무궁화호의 등급 자체가 사실상 격하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전국 주요 간선 노선에 운행되고 있는 열차의 상당 비율이 우등열차로 시작한 무궁화호이다.

우등열차에서 발달한 다양한 형태의 무궁화호들.


<그림7>경부선에 처음 등장한 우등열차의 모습. 월간 한국철도 1977년 9월호 표지를 장식했다.


<그림8,9,10>좌측은 '우등형전기동차'로 등장한 EEC열차(월간 한국철도 1980년 11월호),
중앙부터는 본인이 찍은 '신형무궁화동차(NDC)', 우측은 가장 흔하게볼 수 있는 무궁화 객차.


<그림11,12,13>좌측부터 신조 객차, 디젤기관차, 전기기관차- 모두 무궁화호의 일원.


<그림14>국산 우등전기동차의 운행 개시 안내(한국철도 80년 11월호)

④ 특급, 보통열차의 몰락

반면 1970년대 초까지 장거리, 고급 노선의 주된 등급이었던 특급은 새마을호와 우등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서민을 위한 열차로 탈바꿈한다. 특급은 1980년대에 통일호로 명칭이 통합?개정되며, 비둘기호보다는 비교적 중장거리에서 완행열차의 역할을 한다. 1990년대 말에 비둘기호 등급마저 폐지되자 최하위의 완행열차로 전락했다가, 결국 2004년 KTX의 개통과 함께 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근근히 맥을 잇고 있다. 한편 특급과 보통열차의 중간 역할을 하던 보급열차는 1980년대 초에 특급으로 승격되거나 보통에 흡수되어 사라지며, 오래 전부터 가장 기초적인 완행 역할을 해온 보통열차비둘기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운행된다. 그리고 비둘기호는 지난 2000년 정선선에서의 운행을 끝으로 완전히 폐지된다.

이렇게 열차 등급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현 등급 체계에 근간이 된 것은 1984년의 명칭 개정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정해진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호’ 체계는 오랫동안 한국 철도 열차의 등급체계로 굳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명칭들이 외국인들에게는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웬만한 한국인들에게는 그 명칭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등급의 개념을 지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비둘기호 하면 오래되고 낡은 이미지를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한편, 새마을호 하면 고급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린다. 그런데 이렇게 지속되던 4단계의 등급체계는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비둘기호의 은퇴로 3단계로 축소된다. 비둘기호의 자리는 통일호가 대신하게 되었다. 그마저도 2004년 4월 고속철도의 개통과 함께 사라지고, 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당분간 한국 철도의 등급 체계는 'KTX-새마을-무궁화-통근열차'가 될 예정이다.

(참고자료)
철도청, 『한국 철도』, (철도청, 1984년 1월), 뒤표지.

⑤ 수도권 전철의 등장

한편 1974년 지하철 개통과 함께 건설된 수도권전철은 한국에 최초의 통근형 전철이었다. 물론 19세기 말에 전국 대도시에 건설된 노면 전차나, 20세기 초에 개통된 금강산 전철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전철의 역사가 그리 짧지만은 않다. 하지만 74년에 개통된 전철의 경우 서울의 도심과 근교를 있는 도시철도의 성격을 띈 최초의 전철이었다. 서울 지하철과 직통 운행하여 각기 수원과 인천, 성북까지 운행하였고, 한국 최초로 고상홈 플랫폼이 사용되었다. 어쨌든 같은 국철이지만, 기존의 철도와는 성격과 체계가 다른 철도의 등장이었다. 이후 전국 대도시에는 지하철이 생기지만, 통근 국철만은 수도권에서만 운행된다. 다만 2010년 경에 부산과 울산을 있는 비수도권 최초의 통근 국철이 생길 예정이다.

수도권 전철은 오랫동안 완급에 구분없이 운행되어왔다. 더군다나 서울-수원 구간 같은 경우복선인채로 상당 기간 동안 기존의 간선 열차와 같이 운행되었기 때문에, 통근전철만의완급운행을 꾀하기에는 용량상 한계가 있었다. 다음 표는 수도권전철 개통 당시 열차의 시각표이다. 다음 표를 보면 수원까지의 경우에는 열차 시격이 무려 40분이다. 현재 이 구간의 열차 시격이 출퇴근시 5분, 평시에 10분인 것을 생각한다면 플랫폼에서 열차를 상당히 오래기다려야 했을 것 같다.


<그림 15>1974년 수도권 전철 개통 당시 시각표(한국철도 1974년 8월호)

이후 수도권 전철은 안산선이나 일산선, 분당선 등 서울과 외곽의 도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도심의 지하철이 늘어나는 속도에는 많이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서울 주변의 많은 철도 노선들이 여전히 비전화노선으로 답보상태이다. 예산부족도 문제이지만,지화화를 요구하는 인근 주민들과의 마찰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그리고 1999년에는 경인선의 복복선화 1단계 공사가 완료되면서 급행열차가 운행한다. 급행열차는 몇 개의 역을 정차하지 않고통과하는 열차이며, 별도의 요금이 필요하지는 않다. 당시에는 '직통'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급행으로 명칭이 바뀌어 운행되고 있다. 2003년 현재 급행열차는 경인선 용산-주안 구간과 경부선 서울-병점 두 구간에서만 운행되고 있다. 경부선의 급행은 출퇴근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운행된다. 얼마전 철도청에서는, 2004년 병점-천안간 복복선 공사의 완료이후 이 구간에 급행열차 운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일산선, 과천선 같은 지하 구간은 힘들겠지만, 지상 구간을 운행할 전철에서는 완급 운행의 적용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림 16>수도권 전철의 급행

copyright ⓒ 2005 Shinzino

posted by Gosanza S. 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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