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zino의 유라시아 철도기행 2006'

1부 -시베리아 횡단철도 완승기 -7 모스크바에서 바르샤바로 (1부 끝)


<2006년 9월 29일(금) - 30일(토), 모스크바에서 바르샤바로>


* 러시아에서 폴란드로 가기 위해 바르샤바 행 열차가 출발하는 벨로루스카야 보크잘 Belorusskaya Vokzal 역으로 갔다. 그냥 벨로루스카야 Belorusskaya 역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이 역은 근교 열차가 출발하는 역 같았다. 홈이 두 개에 동차가 오가고 있었고, 개집표를 위한 게이트도 있었다. 반면 벨로루스카야 보크잘 역의 경우 장거리 열차용 역으로, 선로가 끝나는 종착선식 플랫폼이 다섯 개 정도 있었다.


벨로루스카야 보크잘 역(모스크바)

* 2006년 9월 29일 10:23 모스크바 BV → 9월 30일 06:25 바르샤바 중앙, 21호차 2등실(4인실), 41번 침대.

표가 두 장(속지 포함 4장)이다. 각기 R446.1, R1478.9라는 액수가 적혀있는데, 하나는 운임권 하나는 침대권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 액수를 더하면 1925 루블인데, 호스텔에 부탁해서 살 때는 R2350을 받았다(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89(1$=R26,45)+수수료 5% = $94 를 모스크바-바르샤바 간 열차 운임으로 지급하였다. 우리 돈으로 8, 9만원 하는 셈이다.


* 국제열차이기 때문에 열차번호가 구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바뀐다.

(열차는 러시아-벨라루스-폴란드의 3개국을 지나게 된다)

모스크바 - 민스크 Minsk : 025
민스크 - 테레스폴 Terespol : 103
테레스폴 - 바르샤바 : 11008

모스크바에서 출발할 때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기관차┃기관차▶[?][12호차][11호차][10호차][9호차][0호차][8호차][7호차]...[2호차][1호차][*]

기관차: ChS7형 전기기관차 중련 (하루 전 내렸던 TSR에서와 같았다)
[?] : 수화물차나 우편차, 발전차(?)
[0호차]: 식당차나 1등실(?)
[*]: 필자가 탄 바르샤바 행 객차. 이 객차 이외에는 모두 민스크 종착이다. 즉 민스크에서 객차가 분리되어 다른 편성에 붙는다.


모스크바-민스크를 잇는 열차의 기관차(ChS7 형)


앞의 파란색 객차는 민스크 종착, 뒤의 녹색 객차는 바르샤바 행


* 모스크바에서 객실에 오르니 4인실에 필자를 포함 5명이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표 사기 당했구나 싶어 눈 앞이 깜깜해졌으나, 알고보니 다른 한 명이 한 달 뒤의 표를 잘못 산 것이었다. 그는 중간에 내려 다른 열차를 탈 뻔 했으나, 다행히도 같은 객차 다른 방에 자리가 있어 그곳으로 옮겨갔다. 어쨌든 5명이서 오후 2, 3시까지 계속 이야기만 했다. 물론 필자의 경우 거의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같이 탄 4명에 대해 설명을 하면, 러시아인 2명, 벨라루스인 1명, 폴란드인 1명이었는데 모두 러시아어로 대화했다.

표를 잘못 산 그 친구는 러시아인으로 폴란드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바실리'라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한글이나 한국어에 대해서도 꽤 상세히 알고 있었다. '천리마'라는 단어를 말하길레 깜짝 놀랐다. 영어는 매우 유창해서(발음은 좀 이상했지만) 의사소통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벨라루스인의 경우 '호이스챠(발음이 이상해 확실하지 않음)'란 이름의 30살 짜리 형이었는데,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는 카메라맨이었다. 체르노빌 원전과 카스피해 등 여러 곳에서 촬영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영어는 좀 서툴렀지만 어느 정도 대화는 가능한 수준이어서, 바실리가 다른 방으로 간 뒤 음악, 영화, MP3, 오토바이 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 영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일제 오토바이를 매우 좋아했다. 반면 한국의 '도시락'면에 대해 설명해주니 중국산인 줄 알았단다. -_-; 솔직히 이 형 처음 볼 때는 인상이 더러웠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무슨 서부극에 나오는 갱단 두목처럼 생긴게 수염도 자글자글하고 머리도 길렀는데, 소지품 잘 간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사람이 정말 좋았다. 약간 남미 사람처럼 생겼는데, 알고보니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어렸을 때 벨라루스로 왔다고 했다. 결혼은 안 했는데 민스크에 아들이 있단다. 13살 이라는데, 그럼 도대체 애를 몇 살에 낳았다는거지?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빅토르 최(옛 러시아 교포 출신 록커) 좋아한다면서 휴대전화 MP3로 들려준다.

나머지 두 사람은 5, 60대 아저씨 였는데 영어는 전혀 안 통했다. 그렇지만 바실리가 통역을 해주어 간단한 대화는 나눌 수 있었는데, 한국에도 눈이 오냐고 물었고(러시아가 아무리 춥다해도 한국을 아열대국가로 생각하다니), 필자가 가져간 한국어 소설책을 보더니 삽화가 없으면 위아래 구분도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폴란드인 아저씨의 경우 매우 친절했고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 오전 10시에 출발한 열차는 오후 5시경 오시노브카 Osinovka 에서 러시아/벨라루스 국경을 넘지만 별도의 검사는 하지 않는다.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을 넘을 때 러시아 출국 건까지 한번에 다루는 것이다. 가는 내내 보이는 차창 밖 풍경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보았던 러시아의 풍경과 별 다를 바 없었다. TSR과 달리 역에서 컵라면 파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모스크바 바르샤바 간 열차를 타시는 분들은 꼭 타기 전에 먹을 것을 사가지고 타시기를 바란다. 객차의 경우 TSR의 로시야 호보다 시설이 더 안 좋았다. 로시야호의 경우 2003년 제작한 신조였던 반면, 이 객차는 좀 오래되어 보였다. 물론 시설도 깨끗하고 이용에 별 불편은 없었으나, 우리의 통일호와 비슷한 분위기가 풍겼다. 시차의 경우 모스크바를 기준으로 벨라루스가 -1, 폴란드가 -2시간이며, 폴란드 시각은 영국과 포르투갈을 제외한 서유럽 전체의 시간과 같다.



객차 내부

모스크바 시각으로 저녁 9시 쯤 되어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역에 도착했다. 민스크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TSR에서 보았던 도시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민스크 역은 크고 현대적이었으며, 여기서 바르샤바 행 객차가 분리되어 다른 편성에 붙었다. 한편 차장이 출국 신고서를 나눠주었는데, 모두 러시아어로 써있어서 바실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쓰기 힘들 뻔 했다. 그 때 찍은 이미지인데, 혹시 이 루트로 가시는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 출국신고서(앞면)

☞ 출국신고서(뒷면)

밤 12시 반 (모스크바 시각으로 새벽 1시 반) 경, 브레스트 Brest에 도착하다. 브레스트 역사는 왠지 음울한 분위기가 나는 석조 건물이었다. 국경역 답게 면세점도 있었으나 밤이라 그런지 문은 닫은 상태였다. 바실리의 말로는 낮에 지날 경우 면세점을 살펴보며 열차 궤간 바꾸는 것을 기다린다고 했다. 기차역에 면세점이 있다니, 참 신기했다. 같은 방에 있던 벨라루스인 형과 러시아인 아저씨는 내리고 폴란드인 아저씨랑 둘이 남게 되었다. 출국 수속은 열차 내에서 했다. 벨라루스 경찰이 들어와 여권을 수거했고, 다시 조금 뒤 다른 여경이 들어와 신고서를 거두어갔다. 출국이라 그런지 까다로운 것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손전등으로 의자 밑과 짐칸을 훑어보았으나, 가방 속을 일일이 검사하지는 않았다. 다시 여권을 돌려받았는데, 거주자 등록용지 겸 입출국카드는 수거되어 있었다.


브레스트 역

출국 수속이 끝나고 새벽 1시경, 대차를 바꾸기 위해 객차가 차량기자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경우 광궤(1520mm)를, 폴란드와 서유럽 주요 국가의 경우 표준궤(1435mm)를 사용하기 때문에 궤간차가 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객차를 들어 밑의 대차 부분만 바꾸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객차 안에 있는다. 잔뜩 기대를 하고 창가에 기대어 있었는데 언제 바꾸는지도 모르게 바뀌었다. 객차를 든다고 해서 높이 들어올려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나사 끼우는 소리, 연장 소리 같은 것만 계속 들리고. 객차 밖으로 나올 수가 없으니 작업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대차 교환 작업이 끝나고 다시 브레스트 역으로 왔고, 필자의 방에는 바르샤바로 가는 러시아인 모녀가 새로 탔다.


대차 교환 장치

새벽 3시가 다 되어 열차는 서쪽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5분 정도 달리나 싶더니 이제 폴란드 쪽 국경역인 테레스폴 역이었다. 여기서 다시 폴란드 입국 수속을 한다. 폴란드 경찰들이 객차로 들어와서 여권 검사를 하였다. 여권을 보더니 South? North? 라고 묻더니 여권을 가져갔다. 그 사이 여경이 들어오더니 술이나 담배 신고할 것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후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찰이 다시 여권을 가지고 오더니 태어난 곳과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잘 대답을 하자 여권을 돌려주었다. 서울,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니까 인정받는 분위기. 그렇지만 기분이 안 좋았다. 북한이 불량국가 취급 받는거야 상관할 바 아니나, 괜히 우리까지 덤태기 쓰는 것 같았다. 내가 만약 Japan이었어도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들었을까. 여권이라 해봤자 South Korea 가 아닌 Republic of Korea 라고 표시되어 있으니(마찬가지로 북한의 경우 North Korea가 아닌 DPR Korea) 먼 이국땅 사람들에게야 남이건 북이건 구분이 안 갈 법도 하다.


* 어쨌든 그렇게 러시아를 탈출(?)하여 서유럽 진입에 성공하였다. 다시 침대에 올라 잠을 청했고, 드디어 오전 6시 반(모스크바 시각으로 8시반), 약 22시간 만에 바르샤바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바르샤바 중앙역은 우리의 광명역처럼 지하로 진입하여 승강장이 지하에 있는 역이었다. 확실히 역사 내 시설 같은 것이 러시아보다 세련되어 보였고 사먹을 곳도 많이 보였다. 동양인도 많이 보여 러시아에서보다 왠지 마음이 편했다.

바르샤바에 도착해서 먼저 한 것은 베를린으로 가는 표를 사는 일이었다. 카드도 되고 영어도 통해서 쉽게 표를 살 수가 있었다. 표를 사고 아침으로 케밥을 사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 알맹이만 빼먹고 버렸다.

EC46 Berlin - Warszawa Express, 2006년 9월 30일 07:25 바르샤바 중앙 → 13:16 베를린 중앙, 117.79 폴란드 Zlotych (=29.30유로, 한화로 4만원 정도)



바르샤바 중앙역


* 지하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곧 열차가 들어왔다. 빨간색 전기기관차 견인이었고, 흰색 객차에는 Berlin - Warszawa Express 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오픈 살롱 객차와 디파트먼트 객차가 같이 편성되어 있었는데 필자의 좌석은 오픈 살롱이었다. 열차 시설이 확실히 러시아와는 달랐다. 일단 객실이 깨끗하고 최신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문도 자동식이고 화장실 변기도 비행기 화장실처럼 흡입하는 방식이었다. 열차는 곧 바르샤바 시가지를 벗어나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달렸다. 차창으로 보이는 집들이 러시아와는 달리 부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러시아에서는 보통 슬레이트 지붕이 많이 보였는데 여기는 벽돌 지붕이었다. 열차의 속도도 상당히 나오는 것 같았다. 고속열차까지는 아니어도 한 200km/h 정도는 나오는 느낌이었다.

오후 12시 쯤 폴란드/독일 국경을 넘었다. 폴란드 쪽 국경역에서 독일 경찰이 타 일일이 여권을 검사했다. 검사하는 동안 열차는 국경을 넘는데 독일 쪽 국경역에 와서 경찰들은 내렸다. 출입국을 따로 검사하는게 아니라 그냥 한번에 하는 것이다. 나중에 독일에서 벨기에와 프랑스를 거쳐 유로스타를 이용해 영국으로 갔는데, 독일/벨기에 국경의 경우 아얘 검사 자체가 없었다. 역시 유럽은 하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만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로스타를 탈 때는 영국 심사관들이 여권 수속과 짐 검사를 하였는데, 너무 까다롭게 굴어 열차 하나를 놓칠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의 대륙 국가들과는 항상 다른 행보를 보이는 영국의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 1시 반 경 베를린 역에 도착하였다.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놀란 것은 약과에 불과했다.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개장한 베를린 중앙역에 내렸는데, 정말 입이 안 다물어졌다. 유리로 되어있는 것이 우리의 KTX 광명역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미래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위로 기차가 지나가고 아래로 기차가 지나가고.. 외벽 유리 너머로 독일연방의회를 비롯한 베를린의 시가지의 풍경이 들어왔는데 정말 멋졌다. 불과 하루 전 출발한 모스크바의 역과는 완전 다른 세계였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영어도 잘 통하고, 누가 나한테 뭐라 하지도 않고, 경찰이 불심검문 할까 걱정 안 해도 되고.. 정말 지상 낙원이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린-바르샤바 익스프레스


* 이후 독일에서는 5일짜리 독일철도 셀렉트 패스를이용하여 10일 정도 체류하였다. 다시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으로 가서 15일짜리 영국철도 연속패스를 이용해 3주 가량을 체류하고 돌아왔다.

(Shinzino의 유라시아 철도기행 1부 끝)

ⓒ Shinzino 2006 (http://blog.paran.com/station215)

posted by Gosanza S. 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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